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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3월 05일
![]() 고행주의든 수정주의든 육체를 고(苦)의 사실적 원인으로 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들은 육체가 없어져야 괴로움이 참으로 소멸된다고 보지만, 불교는 주지하다시피 육체를 ‘번뇌와 성불의 주체’로 파악한다. 결국 싯다르타는 고행을 포기한다. 육체를 괴롭혀 마음의 정화에 이를 수 있다는 극단적 고행주의는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라는, “고행은 허공에 매듭을 묶으려는 것처럼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수정주의(=속세)’와 ‘고행주의(=체념)’ 모두가 극단임을 인식한 싯다르타는 중도(中道)에 의해 무상(無常)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대각을 성취, 인천의 사표가 됐다. 참고. 레비나스의 고통론에 관한 강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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